박흥숙은 지난 1977년 4월 19일 경에, 광주 학운동의 무등산 중턱 증심사 계곡 덕산골에서 동구청소속으로 알려진 무허가 건물 철거반원 7명 중 4명을 살*한 사람입니다.
당시에 언론은 철거반원들을 묶은 뒤에 망치로 살*한 엽기적인 범죄 행위만을 부각시켰던 것이지만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인 김현장씨가 잡지 기고를 통해 재조명해 그의 실체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는 중학교에 못갈 정도로 정말로 가난했던 ‘도시 빈민 박흥숙’은 이소룡 같은 액션배우를 꿈꿨던 소년이랍니다. 그는 강제 철거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발적 범죄로 인해서 ‘희대의 살*마’로 포장됐으며, 수감 중 1980년 12월 신군부 정권 하에서 갑작스레 사형을 당했습니다.